#01 짜빈동전투
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전투
1966년 9월, 해병여단 3번째 책임지역 베트남 중북부 쭈라이는 베트콩의 활동이 활발한 곳이었다. 북베트남군의 침투도 용이한 지역이었다. 1967년 2월, 곳곳에서 적의 공격 징후가 나타났다.
그러던 14 밤, 증강된 연대규모의 적에 짜민동 제 11중대는 조직적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10배가 넘는 적의 집중공격으로 돌파위기에 처했다.
그럼에도 중대는 날이 밝을 때까지 지원화력을 활용하며 특공조 운용, 육탄공격으로 투혼을 발휘했다.
확인된 전과는 사살 243명, 포로 3명 등이었으며 추정된 전과는 그 이상이었다. 반면 11중대의 피해는 15명 전사, 33명 부상이었다.
제 11중대는 베트남전쟁 사상 최대의 전과를 거두며 해병의 신화를 창조했다. 둑꼬의 승전과 11중대의 승리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미군들도 한국군의 전술을 도입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