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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 Veterans Meeting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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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시실

#01 분리·차단·섬멸

한국군의 작전개념 한국군에 앞서 베트남에 파병된 미군은 수색 및 격멸 개념에 따라 군사력위주의 작전을 펼쳤다. 게릴라를 탐색해 강력한 군사력으로 격멸한다는 정규전 방식의 작전이었다. 반면 한국군은 미군의 작전 개념을 발전시켜 분리―차단―격멸의 3단계 개념을 채택했다.
한국군의 작전개념은 주민과 게릴라를 물과 물고기(水魚之)로 규정했던 유격전술을 역이용한 것으로, 주민 속에 섞여 있는 베트콩을 분리시킨 후 그들을 주민으로부터 차단해 고사(枯死)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군은 주민 거주 지역 외곽에 전술기지를 설치하고 수색정찰과 매목으로 주민으로부터 베트콩을 격리시켜가면서 점차 평정지경을 확대하는 방식의 작전을 펼쳐 나갔다. 그 같은 작전은 지역주민들의 절대 협조가 필요했다. 따라서 한국군은 ‘100명을 치더라도 한사람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사령관의 훈령에 따라 적극적인 민사심리전을 병행했다.

#02 작전 수행 핵심시설

한국군의 전술기지 파병된 한국군은 작전개념에 따라 광범위한 책임지역에서 핵심지역을 선정해 전술기지를 설치했다.
그러나 가용병력의 제한으로 중대를 각 전술기지의 기본단위로 삼았다.
중대단위로 분산된 기지는 베트콩에게 각개격파당할 수 있다는 취약점도 있었다. 따라서 각 기지별로 다음과 같은 대비책을 강구해 연대규모의 공격을 48시간 이상 막아낼 수 있게 했다.
첫째, 아군 포병의 지원거리 내에 뒤치, 화력으로 보호받게 했다.
둘째, 기지 외곽은 겹겹의 철조망과 지뢰지대를 설치하고, 내부는 교통호, 참호 및 유개호로 연결된 강력한 요새를 구축했다.
셋째, 고립방어에 필요한 탄약과 보급품을 사전에 비축했다.

중대기지의 임무는 베트콩과 주민을 분리시키고, 매복으로 그들의 접근을 차단하며, 이미 주민들 속에 섞여 있는 적은 주민들의 협조와 반복적 수색정찰로 색출하여 소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군의 중대기지는 3단계 작전개념 수행을 위한 핵심시설이었다.

#03 성과증대·피해최소화

성과증대·피해최소화 한국군이 파병될 당시 한국군 전체의 전·평시 작전통제권은 주한 미군사령광통제 아래 있었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역시 그 중 일부였으며, 모든 지원을 미군이 제공하는 조건으로 파병됐다. 그 같은 배경에 따라 주월 미군은 파병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행사를 당연시 했으며, 그들의 주장은 전쟁원칙에 비추어 볼 때도 설득력 있었다. 그러나 파병협상 관계자 등 한국군 지휘부는 독자적인 작전권 행사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정규전이 아닌 게릴라전으로 정치전쟁이라는 베트남전쟁의 성격을 들어 한국군과 남베트남군은 따로 독자적인 작전권을 행사했다. 그 결과 한국군은 용병시리를 차단함은 물론 독자적인 전술로 큰 성과를 거두면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독자적인 작전권은 파병된 한국군의 빛나는 활약과 국위선양의 배경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베트남 이후 해외파병의 선계가 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