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아직도 그때의 함성이 ...
해외파병 발진기지/역사의 현장
오음리의 훈련은 실전과 다름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때 그 시절 참전용사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던 함성의 기억들이 오음리 훈련장 곳곳에 남아있다.
산악 능선이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싸인 오음리 일대에서 참전용사들은 한 여름의 땡볕에서, 한 겨울 눈보라의 악조건을 견디어가며 적을 능가하는 체력을 단련하고 전투기술을 연마해야 했다.
오음리는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넘어야 할 1차 관문 이었던 셈이다.
그 관문을 통과하면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점차 필승의 신념으로 바뀌어 졌다.
이제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파병은 40년 안팎의 세월이 지나 역사가 됐다.
따라서 오음리는 참전용사들에게 아련한 ‘추억의 장소’로 그들의 마음에 간직되고 후세들은 조국의 발전을 가져다 준 ‘해외파병 발진기지’라는 ‘역사의 현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03 참전용사의 목숨을 지켜준 훈련장 ...
오음리 훈련장
40여 년 전의 오음리의 훈련장은 악명높은 곳이었다.팔꿈치와 무릎의 피부가 벗겨지는 각개전투 훈련장과
온몸을 휘감는 공포에 떨어야 했던 체험훈련장.
밤낮이 따로 없었던 수색정찰 및 매복훈련장과외줄·두줄·세줄타기에 이어진 레펠, 도피 및 탈출의유격훈련장 막히는 사격과 기동의 연속이었던 분대·소대·중대전투훈련장 등 각각의 훈련장마다 참전용사들의 피땀과 애환이서려있다.
그러나 오음리의 강도 높은 훈련이 있었기에
파병된 참전용사들은 결코 적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